도시계획 전공자, 셰프가 되다
- 2020-08-25
- 크루 인터뷰
1호 치킨 리드 최희용 셰프 이야기.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 생신 미역국을 끓여 드렸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X맛 그 자체였는데, 어머니는 정말 맛있게 드셨어요. 사실 드셔주신 거죠.
Q : 희용님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희용 : 안녕하세요, 플레이팅 1호 키친 리드하고 있는 최희용입니다.
Q : 희용님은 어떻게 요리에 입문하게 되었나요?
희용 : 사실 한국에서 요리나 조리를 전공하지 않았어요. 서울에 있는 모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했죠.
Q : 그 대학에서 가장 유명한 전공 중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거기 출신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아요.
희용 : 네, 맞아요. 잘 아시네요? 도시계획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공부를 계속해서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했어요. 당연히 부모님도 그 길을 원하셨고요. 그런데 실제로 공부를 하다 보니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어요.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과 조금 다름을 느꼈고요. 막상 해보니 적성도 그렇지만 재능도 그다지 없었던 거 같아요.
Q : 그럼 다시 질문을 드리자면 정말 어떻게 요리를 하게 된 거예요?
희용 : 대단히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어요. 저희 부모님은 의류사업으로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셨고, 형과 저는 그런 환경에서 밥을 차려 먹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죠. 자연스레 음식에 관심이 생겼고 아이디어를 쌓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름 의미가 있는 음식을 만든 일이 있었는데, 워낙 바쁘게 사셔서 생일상도 제대로 받아 보시지 못한 어머니 생신의 미역국을 직접 끓여 드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X맛이었죠. 어머니는 정말 맛있게 드셨어요. 사실 드셔주신 거죠.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했을 때 먹는 사람뿐 아니라 만든 사람도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대학에 진학을 한 뒤 2학년 때 학군단에 지원하여 소위로 임관했어요. 처음에는 군대도 꽤 체질에 맞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경직되어 있는 문화가 저와 잘 맞지 않더라고요. 재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군 제대를 하면 다음 진로를 고민했고,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음식 만드는 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어요. 이후 유학을 결심했죠.
Q : 굉장히 다이나믹 하네요. 고민이 많았을 텐데 그래서 어디로 떠났어요?
희용 : 맞아요. 엄청난 고민을 했는데 막상 방향이 정해지니 마음이 편했고 일이 잘 풀렸어요. 영어는 나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권 나라로 알아봤고, 최종 호주를 선택했어요. 연고는 없지만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곳인 만큼 차별도 덜 할 거라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산과 바다를 정말 좋아하는데(등산 마니아) 호주의 자연이 저를 끌어당겼어요. 참고로 제가 있었을 때인 2015년 호주는 삶의 질 수준이 전 세계에서 2위였어요. 앞선 인터뷰이 중 채연님도 호주에서 오래 생활하셨죠. 그곳에서 영어 공부를 더 하면서 일을 했고, 일을 하던 와중에 학교에 진학해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Q : 그럼 호주에서 학교 졸업 후 어떤 곳에서 일을 했어요?
희용 : 당시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동경심이 있어서 이탈리안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면서 음식뿐만 아니라 그들의 문화, 역사 등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이력서를 들고 직접 찾아 본 여러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지원했고, 유명한 다이닝 중 한 곳인 Ventuno(벤투노)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국토는 남북으로 길어서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식재료가 굉장히 다양하고 각 지역마다 음식이 다채롭게 발전을 했어요. 각 지역의 음식이 그곳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있기 때문에 이태리 음식에 큰 관심이 있었죠. 한국에 출간된 이탈리아 음식 관련한 서적은 거의 다 본 듯합니다. 레시피 북, 인문학 서적 등 가리지 않았어요.
Q : ventuno에 대해서 더 소개해 주세요.
희용 : 2010년대 초반 시드니에서 나폴리 피자를 가장 맛있게 만드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자이올로(나폴리 피자 장인) 수준이 워낙 높고 훌륭했어요. 파스타와 코스 요리도 함께 만드는 곳이었죠. 키친 모든 직원이 저를 제외하고는 이탈리아 셰프였어요.
Q : 한국에서 요리를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전 정보가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현지에서 여러 어려움이 많았겠어요.
희용 : 네, 발품을 팔아 이태리 레스토랑을 직접 다니면서 resume를 넣었어요. 영어를 정말 좋아했는데, 사람들과 영어로 말을 섞는 그 자체가 저에게는 너무 큰 기쁨이었죠. 사실 어떤 곳은 합격해도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곳이 있었는데 굳이 이력서를 내면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는 했죠. vetuno는 달랐어요. 진심으로 일을 하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인데요. 문 열기 전부터 몇 시간 기다리고 있다가 출근하는 직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이력서 전달 부탁을 했었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타쥬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이후 출근해서 막내 일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총괄 셰프께서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같이 일을 하자고 했고, 그렇게 정직원으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는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Q : 도전적인 성향이 가득하신가 봐요?
희용 : 음…딱히 그렇지는 않은데요..하하.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다음에는 빠르게 움직이려 노력해요. 제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는데 아직까지 후회는 없습니다. 음식 만드는 일로 삶의 방향을 전환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도 많았고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당시 걱정하던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저에게 조언을 구하시고는 하죠. 그때의 결정이 만족스럽습니다.
Q : 네, 충분히 이해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개척해가는 모습이 우직하니 보기 좋네요. 그럼 한국에는 어떻게 다시 오게 되었나요?
희용 : 음…당시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죄짓고 살지는 않아요.) 다소 급하게 들어오기는 했어요. 이후 한국에 머물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도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약 3년간 근무를 했어요. 여전히 호주가 그리웠고 그곳의 환경이 제 삶의 가치관과 부합되는 부분이 많아 일을 하면서 적당한 시기에 다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당장 비행기 표 끊고 호주로 가고 싶었죠.
Q : 결국 가지 못했다는 느낌인데요?
희용 : 네, 지금의 아내를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만났죠. 저보다 상사 셰프였습니다.
Q : 아..가지 못하게 잡았나요?
희용 : 그런 것은 아니지만…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잡혔네요. 같은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한 명이 그만두니 관계도 좋아지더라고요.
청담과 역삼에서 브런치 다이닝으로 유명했던 Stove(스토브)라는 레스토랑이었어요. 매일 다른 브런치 메뉴를 선보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요리와 관련한 아이디어 및 실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 이후 이탈리안 다이닝 CDP, 프렌치 레스토랑 수 셰프로 자리를 옮겨 근무를 하던 중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 그때 플레이팅에 합류하게 된 건가요?
희용 : 네, 그런 셈이죠! 청담동에서 어윤권 셰프가 운영하는 Ristorante Eo(리스토란테 에오)와 플레이팅 중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저는 논현동으로 오고 있더라고요.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참고로 말씀드리면 플레이팅은 서울 논현동에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포맷으로의 도전에 목이 말랐던 듯해요.
Q :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할 때와 플레이팅의 환경은 다소 결이 다를 텐데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희용 : 네, 맞아요. 입사 초반에는 회사에 큰 변화가 있던 시기라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다른 부분 중 하나는 고객의 소리가 잘 들려오지 않았던 부분이에요. 레스토랑은 직접 듣거나 홀에 계신 분들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꽤 직접적으로 듣거든요. 저희는 케이터링 서비스이다 보니 고객의 소리를 셰프가 직접 듣는 것이 한계가 있었죠. 그 부분이 적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Q : 세월이 지난 지금은 좀 적응이 되었나요?
희용 : 현재는 고객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다양한 피드백을 주시고 그 피드백을 운영팀에서 저희에게 잘 전달해 주어서 키친팀 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VOC를 듣지 않으면 저희 음식이 어떠한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회사에서 가장 보람찰 때 역시 고객사로부터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받을 때입니다. 고객에게 집중하기 위함이라 좋은 평가든 나쁜 평가든 중요하지 않아요. 셰프의 자양분입니다.
Q : 오! 희용님은 격동의 시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나요?
희용 : 많죠. 좋은 에피소드는 평생 살면서 들어가기 어려웠을 청와대 출입하여 케이터링을 한 것입니다. 잊지 못할 추억이죠. 그 외 좋은 기억 그렇지 않은 기억 많지만 말을 아끼는 걸로…..(쿨럭)
Q : 네, 굳이 그런 기억을 끄집어 낼 필요는 없죠.
희용 : 그렇죠…지금은 함께 일하고 있는 직원들 대다수 제가 직접 채용했기 때문에 상호 호흡을 매우 좋아요. 물론, 저 때문에 어려워하는 부분도 분명 많지 않을까 해요.
Q : 많이 어렵다고 하던데요?? 하하
희용 : 후…하하 팀원들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키친은 위험에 노출된 환경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긴장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물론 어느 정도입니다. 요즘 보면 다들 너무 잘해주고 있어서 불안함이 전혀 없어요. 함께 일하는 멤버들이 흡수가 워낙 빠르기 때문인데 플레이팅 전체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키친과 운영팀은 업무상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함께 의논하는 절차도 굉장히 유연하고 오픈되어 있어요. 이런 부분이 서로 일이 잘 되게끔 하는 원동력이죠.
Q : 이쯤에서 공통 질문인 희용님의 맛집은?
희용 : 저는 구리에 사는에 이쪽 동네에 ‘골목안채’라는 엄청난 식당이 있어요. 방송에도 여러 번 소개가 된 곳인데 바지락칼국수와 낙지볶음이 주메뉴이죠. 칼국수에 낙지볶음을 넣어 비벼 먹는 곳인데 최고의 맛입니다. 줄 서서 먹는 식당이라 자리싸움도 치열해요. 특이한 것은 소주를 테이블 당 1병만 팔아요. 저는 반주를 좋아하는데 아내와 함께 가면 딱 1병 마시기 좋죠. 골목안채라는 식당 이름처럼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라 장판에 앉아 먹는 그 느낌이 일품입니다. (찾아보니 진짜 로컬 맛집이네요)
Q : 그럼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은?
희용 : 이태리 요리 전반적으로 자신 있지만 그래도 하나를 고르라면 꽁치김치찌개요.
Q : 꽁치김치찌개요?
희용 : 네, 저보다 잘하는 사람 세상에 많겠지만 저 좀 잘합니다. 이거 드셔 보시려면 소주 한 병 들고 오셔야 해요.
Q : 하하 언제든!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맛없으면 골목안채 가면 되죠. 평소에 음식은 자주 하세요?
희용 : 최근 산에 푹 빠졌는데 그 덕에 아내와 캠핑을 즐겨 해요. 캠핑 가서 여러 요리를 자주 해먹어요.
Q : 캠핑은 부지런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해요.
희용 : 음..제가 부지런한 사람인지는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Q : 플레이팅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희용 : 플레이팅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살린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음식이 있으면 그 음식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고, 어떤 생각과 의도가 담긴 것인지 그런 스토리요. 개인적으로는 팀원 모두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키친이 점차 확대되어 팀원이 다른 키친의 팀장이 되며 성장하는 모습 말이죠. 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Q : 고객사 그리고 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희용 : 언제든지 무슨 소리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니 가감 없이 다양한 의견을 주시면 좋겠어요. 조식에 대해 좋은 평가도 좋고 중식이나 케이터링에 대해 좋은 평가도 정말 감사한데, 그렇지 않은 의견이라도 좋으니 많이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음식을 만드는데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팀원들에게는 앞으로도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 열심히 하자고 힘내라고 전하고 싶어요. 모두 요리의 기준이 높다 보니 때로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고 셰프로서 더욱 프로답게 적극적으로 매진했으면 좋겠습니다.